못돼쳐먹은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영화] 박화영(2018), 파리대왕(1992) 후기:

 * 줄거리라기보다는 의식의 흐름 중심의 리뷰입니다만, 결말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는 아니지만 가끔은 하루에 두 편 정도 보기도 한다.

특히 최근 왓차까지 정기결제를 신청한 뒤에는 넷플릭스와 왓차를 배회하며 볼만한 작품을 찾아 헤매는 망령이 됐다.

오늘은 맡았던 학보사 일도 마무리한 김에 축는 김에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무엇을 볼까 고민하던 중 파리대왕과 박화영을 보게 됐다.

처음에 을 본 것은…왓챠에게 추천목록에 나와있어서… 그러면서 평소에 취향에 가까운 외설한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다.

원작소설은 고등학생 때 반쯤 본 적은 있지만 사실 건성이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영화는… 솔직히 별로 재미는 없었다.

비록 원작소설은 내가 꼼꼼히 읽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묘하게 불쾌한 느낌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는 원작만큼 충격적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얼굴을 붉게 칠하고 야만인의 길을 걷는 잭의 무리, 그리고 극의 배경이 되는 섬은, 얼마 전 본 를 연상시켰다.

그린 인페르노가 너무 심한 (웃음…) 고어 영화라 그런지 비슷한 분위기의 파리대왕까지도 좀 다른 의미로(?) 잔혹해 보였다.

그리고 정말 인상 깊었던 건 박화영. 사실 평소에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조미료맛(!
!
)이 많이 나는 영화를 좋아해서 독립영화 쪽으로도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보여준 파수꾼도 독립영화계에서 손꼽히는 수작이라지만 나는 당시 교양이 가난해서인지(지금이라고 해서 고상하지는 않다), 건성 때문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박화영을 보기로 한 것은 나름의 모험이었다.

더구나 얼마 전 파리대왕을 본 뒤라 웬만하면 가볍게 웃는 코미디를 보고 싶었는데. 왠지 박화영에게 눈이 갔다니…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내외로 부담이 없는 분량이었던 것도 선택에 한몫했다.

아무튼 그렇게 보게 된 박화영. 되게… 어색했어. 사실 인터넷에서 매우 불쾌하다는 글을 자주 보고 내심 걱정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심장(!
!
)인지 그렇게 개운치 않았다.

물론 적나라한 가출팸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각종 네이버 웹툰 등에서는 가출 팜에 어둠의 세계에서 힘을 쓴다…왜 학창 시절 이지메를 가끔 잘나가는 *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에서, 이상하게 가출 팜 청소년들에 대한 (청소년들이 동경할 만한) 요염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는데, 만약 위 웹툰 등에서 가출 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사람이 있다면 박화영을 꼭 감상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가출팸, 일진 미화 등으로 주로 화제가 되는 모 웹툰에서도 박화영에게 등장하는 가출팸의 거의 모든 면을 다루긴 한다.

미성년자 성매수범을 현장에서 붙잡아 돈을 뜯어내는 가출팸 오빠들, 입고 있던 속옷을 팔아 돈을 버는 고교생 등. 그런데도 웹툰에 등장하는 이들이 영화 박화영에서처럼 불쾌한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영상 대 그림이라는 매체의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가출팸을 포함한 청소년 탈선범죄에 대한 창작자의 고뇌, 그리고 시선의 무게가 골자가 아닐까.)

박화영의 결말을 가끔 불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더라. 내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유로 영화 내내 영재와 미정, 가출팸 사람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당하고 온갖 모욕을 감수해온 화영은 결말을 맺어도 변치 않는다.

영재로 미정의 살인죄까지 쓰고 자수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화영과 재회한 미정은 화영에 일말의 죄책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화영이 연락을 했을 때 정말 기쁘다며 어떻게 지냈느냐고 쾌활하게 묻는다.

양꼬치집에서 둘이 재회했을 때도 미정은 예전과 달리 담배도 안 피우고 욕설을 퍼붓는 화영에게 무슨 욕이냐고 짓궂게(!
). 촬영 중 뚱뚱하게 A라인 스커트가 D라인 스커트가 됐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미정 앞에서 담뱃재가 섞인 가래를 뱉는 화영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정과 헤어진 뒤에는 화영이 다시 엄마가 돼 가출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에게 라면을 사주고 지나친 농담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어떤 사이다도 아무것도 없는 이 영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상투적이지만 화영에게 냉랭한 학교 선생님,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울타리가 절실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세상에 봉변을 당한 사람도, 남을 협박해 먹는 사람도 많고 언제나 개운한 권선징악이 따르지도 않는다.

천벌을 받아 마땅해 보이는 사람이 누구보다 성공해 현생을 즐기는 일도 자주 보고. 영화 속에서 미정도 마찬가지다.

(실제 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것은 미정, 영재, 세진이지만 명확하게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 것은 미정뿐이었다) 화영의 등을 두드려 교도소행도 면했지만 화영에 대한 부채감도 느끼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런 일도 있으니까 생각하려 해도. 이런 간단한 내 말은 박화영처럼 극단적으로 나쁜 놈들에게 안 당해본 곳이라고 말하는 거지?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박화영에서는 잠깐 등장했던 세진이 주연으로 등장해 부국제에서 시연했는데, 2021년경 개봉될 영화 의 티저이다.

박화영을 읽은 뒤 네이버에서 소감을 읽던 중 후속작이 나올 예정임을 발견하고 유튜브로 직행해 찾은 영상이다.

세진은 박화영부터 등장했을 때도 임팩트가 약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박화영의 절정쯤 되면 갑작스런 충격뉴스와 함께 (!
!
) 사라진 게 신기할 정도였는데 연작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다시 박화영 초반을 보면 어른들은 몰라에서 수술비를 찾는다며 급한 돈을 모으는 세진의 상황이. 대강 짐작했네.

아무튼 세진 박화영 내에서 임팩트를 떠나 세진에게 이입된 줄 몰랐는데. 예고편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세진의 이야기에 대한 암시나… 영상 사이에 삽입된 보드를 타는 세진의 뒷모습을 보고 왜 갑자기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박화영의 여운이 겹쳐서 그런지.

박화영 얘기만 하면 창피하니까 파리대왕의 포스터도 함께… 아무튼 본의 아니게 하루에 이은 , 은 모두 인간의 못된 짓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나는 성악설을 맹신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타고난 본성을 가진 사람은 많은 것 같다.

진짜…

최근 한 달 동안 속속 채워지고 있는 영화감상 목록… 이제 뭐 볼 거야?